컴퓨터를 처음 접한것은 초등학교 1학년때쯤이었나 Gw-Basic을 컴퓨터 학원에서 배우면서였다. 그때 내가 짠 명령형 프로그램으로 간단한 덧셈과 뺄셈을 하고 화면에 그림을 그리거나 PC 스피커로 애국가를 연주하게 했던 기억, 그리고 주말이면 어김없이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 몇장을 바꿔 끼워가며 했던 오락이 기억에 남는다.
중학생일때는 머드(MUD)게임에 심취 했었고, 고등학생 때는 나우누리라고 하는 PC 통신의 지역 모임 사람들과 온/오프라인에서 만나 수다를 떨기도 하고 모두가 하는 치열한 입시 공부를 하지 않고, 저녁이면 혼자 와레즈(warez) 사이트를 만들거나 Home page를 만들며 현실을 잊기 위한 시간들을 보냈다.
대학교 재학 시절 방학 기간에는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한 번은 아파트에 스프링 쿨러를 설치 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다, 어느 병원 영안실에서 스프링 쿨러를 설치 하는 일을 했었는데 그때 매우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또 한 번은 현장 소장님이, 오늘 업무 할당량을 모두 다 끝내면 퇴근 시간 이어도 집에 가도 좋다는 말을 해서, 정말 열심이 업무를 끝냈는데 어느덧 퇴근 시간이 되있었고, 그 정도로 나는 미련한 사람이었다.
컴퓨터 관련해서는 한전KDN이라는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고, 배전 자동화 시스템을 이용해 X-Y 플로터가 프린팅한 정보를 시스템에 입력하는 역할을 했었다.
과외 하는 친구들이 너무도 부러워 틈틈이 다른 사람 컴퓨터를 고쳐주는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컴퓨터를 고치는 것 이외에 특정한 CAD 프로그램을 크랙킹해서 설치해달라는 요청을 받아서 온갖 구글링 끝에 방법을 찾아서 크랙킹 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어떤 날은 일용직 회사에 나가, 잡일(설비) 일을 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파견나간 현장이 영어 유치원이었다.
그 유치원 원장 남편분이 같은 대학 동문이었고 체육 선생님이었는데, 내가 컴퓨터학과라는것을 알고는 측은 했는지 자신의 초등학교 고학년 자녀들에게 C언어에 대한 수업을 해주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다.
해서, 낮에는 왐마를 들고 건물의 외벽을 부수는 일을 하고 저녁에는 그집 아이들에게 c언어를 가르치는 일을 했다.(그 아이들은 나중에 정보올림 피아드에서 상을 받았다)
군 복무는 대체 복무를 하였는데, 그때도 그저, 막연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까워 미래를 위해 도움이 되는 기술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짬짬이 공부해서 1년만에 전자 상거래 관리사 2급자격증을 딸 수 있었다. 어디에도 쓰이지 않을 것 같던 이 전자상거래 관리사 자격증은 훗날 신세계I&C에 취업할때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대학 3학년일 무렵, 어떤 계기로 지원 하게 되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다니던 대학의 부설 기관에서 6개월짜리 전문 프로그래머 양성 과정을 국비로 개강한다는 소식을 듣고 Java 웹 프로그래밍 경험을 토대로 공부했던 지식과 개선 방향(지금의 MVC 구조와 비슷할듯)을 적어, 해당 교육 기관의 담당자에게 날 뽑아달라고 부탁 메일을 드렸었고, 미취업자들에게 취업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되었던 과정이라 나처럼 많은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TO는 터무니 없이 적었지만 운이 좋아 원하는 강의를 들을 수 있게 되어 매우 행복했다.
프로그래밍 과정 강의 자리는 아침에 먼저 도착하는 순서대로 앞 자리에 앉을 수 있었기에, 나는 가장 먼저 도착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였고, 아직 졸업을 하기에는 2년 가까이 시간이 남아 있었던 3학년 생이었기에 기 졸업자와 4학년 졸업 예정자 사이에 끼인 상태였다. 6개월의 프로그래밍 과정을 오전에 듣고, 오후에는 학교 야간 수업으로 학점을 메웠던 이 시기에는 참 바쁘게 보냈던것 같다. 이 과정을 마치고 MCAD라는 국제 공인 자격증을 취득하고 최종 프로젝트로 소프트웨어 공모전에 제출하여 입상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시간이 흘러 3학년 2학기때 갑작스레 인턴쉽 프로그램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것 같다, 인턴쉽 공고를 보던 중, 마이크로소프트 이노베이션 인턴쉽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력서를 몇 부나 뽑고 그 무거웠던 프로젝트 설명서를 들고 인턴쉽 설명회에 참석해서 여러 회사에 지원서를 냈던것 같다. 그 프로그램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주최하고 한국의 여러 벤처 회사들이 참가하는 인턴쉽 채용 박람회 같은 거였는데, 내가 가장 많은 회사에 지원을 했었어서, 사회자가 이런 열정적인 지원자가 있다고 한 멘트가 기억에 남는다. 나는 그때 SKT와 연계된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에 최종 합격하였는데, 그때 당시에 면접관이 나와 동갑이었던 것이 인상 깊었다. 나쁘지 않은 인턴 처우를 제안 받았지만, 새로운 세상에 나간다는 두려움과 현실의 장벽에 막혀 나는 그 기회를 그대로 날려버리고 말았다. 지금 생각 해보면 그것이 득이었을지 독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날린 기회에 대한 후회가 기폭제가 되어, 3개월쯤 뒤에 곧 바로 JCE라는 프리스타일이라는 농구 게임으로 유명한 회사에 웹 프로그래머 인턴쉽으로 입사하게 된다. JCE라는 회사는 경기도 성남시 야탑동에 있었는데, 고속버스 터미널과 가까운 BYC 빌딩(정말 1층에 BYC 매장이 있었음) 건물 옆에 빵집이 있었고, 그 앞에 쌩뚱맞게 무슨 동상이 있었다.
그 동상 앞에서 1시간 정도 면접 준비, 특히 자기 소개서와 예상 문제들에 대한 질답을 미친 사람처럼 소리내어 연습, 또 연습을 했었다.
그때 내 면접에 참석하셨던 두 분의 김,장팀장님이 계셨는데, 그때 장팀장님은 내 인상을 보고 뽑지 말자고 하셨고, 김팀장님은 날 뽑아도 된다고 해서 내가 합격하게 되었다. 그때 그 두분께서 나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아찔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한달 60만원 정도 월급을 받았었고, 회사와 가까운 고시원에서 월세 48만원을 내고 2년을 살았었다. 그 동안 장염을 세번 가까이 앓았었는데, 미련하게도 개인 수저를 쓸 생각을 못했다. 장염의 고통에 몸부림 치면서 하루에도 두번이나 병원을 찾아 갔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몇 일 아팠느냐, 앞으로 6일은 더 아플것이다.”라고 했던 말을 듣고 좌절 했던 기억이 난다. 나의 고시원 생활은 흡사 톰 행크스가 출현한 “Cast Away”라는 영화의 그와 같다고 생각한다.
6개월 정도되는 인턴쉽 과정동안 입술이 부르터가면서 매 주 1회 이상 PT를 하며 배운것을 확인해 나가는 신나는 시간을 보냈던것 같다. Spring/Silver light/Struts 2등의 기술을 배웠고 패키지형 블로그 등을 만들면서 배움의 시간을 보냈던것 같다. 그 결과, 좋은 평가로 입사 제의를 받았고 그와 더불어 한번도 학교를 찾아가지 않은 괘씸죄로 마련해 둔 한 학기 장학금이 날아가면서 약 440만원이 되는 장학금을 내야 했다. (훗날 이 장학금을 갚는데 매우 힘들었다.)
인턴쉽을 시작하던 날 긴장된 마음으로 참석한 회식자리에서 빈속에 필름이 끈기도록 술을 마셨고(겁도 없이) “그저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라는 말을 부끄러움 없이 해댔던것 같다. 뭔가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된것 같아 만족스러웠던것 같고 한 없이 행복했다.
나의 인턴 생활은 즐겁고 즐겁고 즐거웠다.
원 없이 공부했고, 하루 5시간 가까이 헬스장에서 수영과 운동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배움에 갈망하던 난 많은 것을 배우고 시도 해 볼 수 있었다.
10년이 훌쩍 지난 뒤인데, 회사에서 일하는 점이 그떄의 내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은 큰 차이가 없다. 개인적으로는 그때보다 많은 것을 얻었고(사랑하는 아들, 딸, 그리고 와이프) 경제적으로도 당장은 먹고 사는것에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감사하다.)
JCE에서 정직원이 된 뒤부터는 상용 게임 웹 사이트를 개발을 했던것 같고 Bakend Data를 Frontend로 전달 해 FreeMarker와 JQuery를 이용한 Ajax 통신 방법을 많이 사용했던 것 같다. 뭣 모르고 이렇게 저렇게 만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돌아가는 결과물을 만들어 낸것이 용하다 싶다. Ajax 덕분에 화면에 뿌려지는 데이터의 량이 많더라도 필요한 부분만 변경해가면서 빠르게 화면을 보여 줄 수 있어 좋았던 기억이 있고, 그 대신에 History Navigation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했었던 것 같다.
내가 속해 있던 부서는 디자이너들과 기획/개발이 모두 공존하는 부서였다. 차 상위 조직장님은 디자이너 출신이셨다.
그 당시 고군분투 하던 날 좋게 봐주셔서 감사 신인상도 받을 수 있었다. 디자이너분들과 가까이 협업하면서 좋았던 점은 개발 이외에도 외적인 면을 볼 수 있었단 것이고, 이때 가입한 동아리는 애니메이션 등의 그림들을 감상하는 동아리였다. 한 가지 불편했던 점이라 한다면 디자이너분들이 일찍 결혼을 하셔서 주말마다 정장에 무거운 전공서적을 들고 뛰어다녔던 것이다.